강청기도의 마음
눅11:5-8
기도의 탁월한 티칭이 누가복음 11장에 연속됩니다. 주님의 기도(눅11:1-4) 다음에 나오는 기도의 태도를 가르치는 강청기도의 마음은 저의 마음을 찡하게 하다. 지금까지 우리의 기도의 영성이라는 것이 우리의 열심이나 열정을 근거로 한 것이었습니다. '간청' 기도는 기도자의 열정에 촛점이 맞춰져 있습니다.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가 '강청'하기를 원하신다. 개역개정에는 간청이라 되어 있습니다. 저는 반대하다. 간청이 아니라 '강청'이 맞습니다.
강청이란 헬라어로 '아나이 데이아' 란 말이다. 이 말은 ‘부끄러움이 없는' ’뻔뻔스러운‘ 이란 뜻이다. 여행중에 찾아온 벗이 떡 3덩이를 구하다. 오병이어의 사건에서 우리가 보는 것처럼 한 소년의 한끼 도시락이 떡5개와 물고기 두마리이다. 그런데 지금 밤중에 찾아온 친구의 요구는 떡 3덩이 이다. 생계를 위하여 구하는 것이 거창한 것도 아닌도 이 요구를 받은 친구는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. 이 떡 3덩이를 위해서 밤 12시에 하루 일과를 모두 마치고 문단속하고 자기를 청하는 또 다른 친구에게 찾아갑니다. 창피함을 무릅쓰고, 뻔뻔함으로 말이다. 본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아쉬운 소리하기가 더 쉬울 수 있습니다. 그것도 폼나는 사업자금이거나 거창한 프로젝트를 위한 것도 아닌데... 고작 떡 3덩이... 그것도 밤12시... 그러나 강청기도는 두 가지 마음이 부어집니다.
첫째, 떡 3덩이를 줄 수 없는 기도자의 연역함을 기도자 스스로 절실히 깨닫는 마음
약할 때 오히려 주님은 강하신다. 기도자들이 자신의 기도의 열정에 너무 근거를 둔 나머지 하나님을 팔을 꺾으려 할 때가 있습니다. 강청기도는 자신이 얼마나 부족하고 연약한지 알아야 할 수 있습니다.
둘째 , 요청하는 친구의 절실함을 아는 마음
생명이 없어 아우성치는 다음세대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마치 마게도냐의 사람들이 " 와서 도우라" 라고 바울의 환상 가운데 나타나 바울의 선교 방향을 바꾼 것처럼 말이다.
주님의 시간이 마감되고 있습니다. 문을 닫고 쉬기를 원하는 시간이 오고 있습니다. 주님은 영원토록 참으시는 것이 아니라 오래 참으신다. 그러나 그 시간은 제한되어 있습니다. 주님의 시간에 열린 은혜를 마감할 것이다. 마지막 때 왜? 나이트워치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날까요? 급한 영혼들의 요구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 드려져야하기 때문이다. 밤낮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는 , 지치지 않는 마음은 " 강청기도의 마음 이다. "